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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의 확신이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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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다윗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289회   작성일Date 22-04-15 14:53

    본문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히12:2)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말은 우리도 예수님처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말이다.
    그런데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말이 참 근사한 말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산다는 것은 근사한 일이 아니다.
    나의 자존심이 처참하게 짓밟히고 처절한 고통과 한숨과 눈물, 치욕과 분노를 꿀꺽 삼키고, 끙끙거리며 밤을 지새워야 함을 의미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말은 내가 희생한다는 말이다. 내가 손해를 본다는 말이다.
    그런데 자기가 손해 보고, 희생한다는 것은 우리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일이다.
      때때로 우리가 겉으로 보기에 희생하고 손해를 보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을 할 때가 있다.
    그 때는 언제인가 하면, 지금 내가 손해 보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은혜를 이미 받았기 때문에,
     내가 어떤 희생을 하더라도 그것을 희생이라고 할 수 없을 때이다.
    또 한 가지 경우는 내가 지금 이런저런 손해를 보면, 그 보상으로 내가 희생하고 손해 본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큰 축복이 주어진다는 것을 확신할 때이다.
    십자가를 지는 일은 주님조차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고, 자기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처절하게 기도의 씨름을 하셔야 했다.
    그 때에 성령께서 그에게 십자가 후에 따라오는 부활의 영광과 보좌에 앉으시게 될 것을 확신하게 해 주셨다.
    그래서 십자가의 고통과 수치를 참아내실 수 있었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설명하고 있다.
    아브라함도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시험을 받았을 때에,
    하나님께서 자신이 죽여 번제로 바치게 될 이삭을 다시 살려내실 줄 믿었기 때문에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가 너무도 분명하다. 우리는 기어코 부활의 확신을 구해서 얻어야 한다!
                                                                < 담임목사 전순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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